★인생★/해우소

노가다 이야기

조고레 2013. 4. 25. 14:30

노가다 판에서 일했던 적이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무살 무렵부터. 기술도 없고 키도 작고 조그만 내가 그곳에서 적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술이 없으니 할 수 있는 일은 대부분 잡일. 따라다니면서 소위 말하는 '시다바리'를 했다. 청소 하라 그러면 청소를 했고 간식 나눠주는 일도하고 담배심부름도 하고. 따까리였다 그냥.


집이 어려워진게 고등학교를 다닐때 쯤이었다. 그 전까지는 곱게, 나름 부유하게 자랐다. 뭐 IMF 이후로 부모님이 조금 힘드셨지만 ... 그래도 고등학교때처럼 가난하지는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런 환경에 적응하기란 쉽지가 않았다. 그때의 나는 그들과 하등 다를 것 없는 비리비리한 인생이었지만 마음 한켠에서는 나는 이들과 다르다, 나는 이들보다 더 나은 사람이다 하는 생각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별것도 없는게 자존심만 있었다. 그러나 그 자존심, 버리는데까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많이 맞았다. 뭐 심하게 맞은건 아니지만 뒤통수도 많이 맞았고 굼뜨다고 걷어차이기도 일수였다. 그래도 꾸준히 인력사무소로 나갔다. 기술없고 딱히 잘난것 없는 내가 그정도로라도 벌려면 그 일이라도 해야했기에 꾸역꾸역 나갔다. 시간이 지나니 일도 몸에 익었고 노가다 형님들도 슬슬 나를 챙겨주기 시작했다. 흙먼지 투성이인 그곳에도 저마다 마음속에 꽃 한송이 씩은 품고 살더라. 


형님들 따라 다니면서 나쁜짓도 많이 했다. 술먹고 시비걸어 쌈박질 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그냥 그렇게라도 하는게 사회를 향한 우리의 아우성이었다. 가진것 없고 누리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한을 푸는 방법은 원초적이고 폭력적이다. 잘했다는건 아니지만, 그것 말고는 다른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그러고들 살았나보다 우리는. 


꾸준히 하지는 못했다. 반년 정도 사무소를 꾸준히 나가다가 몸이 견디지 못해 그만뒀다. 그 후로도 돈이 궁하다 싶으면 자주 나가기는 했지만. 평생 업으로 삼을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때에도 나는 공부를 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늦었다고 생각했다 공부하기에는.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지금 학원다니며 공부한다.